뿌하인드
뿌하인드는 계단뿌셔클럽의 '비하인드 스토리'를 전하는 비정기 레터입니다. 계뿌클 오피스 구성원들이 가끔 나누고 싶은 이야기가 있을 때 써서 보내드립니다. 오늘 작성자는 버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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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6월 저는 DMZ 피스트레인 페스티벌이란 축제에 다녀왔습니다. 너무 감동한 나머지, 여기를 이동약자와 그 친구들과 반드시 다시 와야겠다고 생각했죠. 생각까지만 했으면 좋았을 텐데, 경솔하게도 뿌하인드에 그걸 써버렸지 뭐에요? 대중교통으로는 갈 수도 없는 철원의 음악 페스티벌에, 다양한 몸과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함께 가서 신나게 놀겠다는 약속이었습니다. 저는 이 약속을 그 뒤로 여러 번 후회하게 됩니다.
*오늘 뿌하인드에는 BGM이 있습니다. 페퍼톤스의 21세기의 어떤 날을 틀어두고 읽어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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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다른, 계뿌클, 김미소 DMZ 피스트레인 페스티벌 총감독님의 첫 만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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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은 한 통의 인사였습니다. 모두를 위한 접근성을 설계하는 조금다른 주식회사의 충현님이 "뿌하인드 잘 봤다"고 하시더라고요. 이야기를 나눠보니 충현님도 'DMZ 피스트레인 페스티벌에 다양한 사람들이 가서 어울리면 좋겠다'는 생각을 오래 해오셨습니다. 그리고 결정적인 한마디. "저, 예전에 피스트레인에서 일한 적도 있어요."
만약 진짜로 한다면, 이런 일은 '주최측 설득'이 가장 어렵습니다. 그런데 조금다른과 함께라면 (1) 피스트레인을 설득하기도 수월하고 (2) 계뿌클이 잘 모르는 시각·청각·발달 등 다양한 장애 유형의 접근성까지 지원할 수 있겠더라고요. 그래서 공동기획으로 조금다른을 꼬셨고, 쉽게(?) 넘어왔고, 생각한 기획 방향도 비슷해서, 생각보다 빨리 제안서를 들고 피스트레인 사무국과도 마주 앉게 됐습니다.
필요성을 설득하려고 만반의 준비를 해서 갔는데, 다 허사였습니다. 사무국에서 "안 그래도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있었고, 방법을 고민하던 차였는데 먼저 제안해주셔서 감사하다"고 하셨거든요. '이렇게 순조로울 수가 있나?' 싶었습니다.
그러나, 딱 여기까지였습니다.
저는 낙관적인 편입니다. 가장 인기 있는 페스티벌의 협력을 얻었고, 조금다른이라는 전문성 갖춘 파트너와 팀을 꾸렸으니 기업 설득쯤이야 어렵지 않을 거라 생각했어요. 우리 프로젝트 '우정원정대'의 요점은 이랬습니다. (1) 장애인 관객 20명을 모집해 대중교통으로 갈 수 없는 철원에 가서 즐긴다 (2) 접근성 지원 부스를 운영해 다양한 관객이 편안히 즐기게 한다 (3) 1만 5천 명 넘는 비장애인 관객과 원정대가 어울려 노는 경험을 만들면, '장애'에 대한 사람들의 생각이 달라진다. 근사하죠?
제안서를 들고 여기저기 설득하러 다녔습니다. 다 거절이었습니다. "20명은 너무 적지 않나요?", "좀 더 시급한 일에 사회공헌 예산을 쓰는 기조입니다”하는 반응이었습니다. 거절이 쌓이면서 '이게 그렇게 좋은 아이디어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는 건 어쩔 수가 없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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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모를 최대한 줄여서라도 해야 하나, 그러면 올해 예산에 구멍이 나는데 어쩌지, 고민이 점점 커졌습니다. 우정원정대가 참 멋진 아이디어인데 펀딩이 안 된다고, 만나는 사람마다 하소연을 하고 다녔어요. 그랬더니 사려깊은 어른 엄 선생님께서 예상치 못한 제안을 주셨습니다. 올해 당신의 쉰 번째 생일을 맞아, 동갑내기 친구들에게 '우정원정대를 철원으로 보내주는 일에 동참하자'는 크라우드 펀딩을 열어봐도 되겠냐는 것이었어요. 너무 감사했지만, 수많은 거절에 닳아버린 저는 솔직히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필요한 돈이 1,200만 원인데… 정말 될까?'
다행히 이번에도 제 예상이 틀렸습니다. 오십 번째 생일잔치를 뜻깊게도 철원에서 열어보자는 엄 선생님의 설득력 있는 공개 편지에 수많은 분의 마음이 움직였습니다. 단 1주일 만에 1,200만 원 목표 금액이 채워지는,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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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뒤로는 속도전이었습니다. 최초 예상보다 펀딩이 늦게 마무리됐거든요. 부랴부랴 다양한 장애 유형의 참여자를 모집했습니다. 약 20명의 장애인 관객과 동반인, 그리고 관련 경험이 풍부한 든든한 스태프 21명까지, 그렇게 원정대가 결성됐습니다. 축제 전에 미리 만난 두 번의 워크숍에서 '나만의 춤 동작'도 만들고, '페스티벌 버전의 내 모습'도 꾸며보며 만반의 준비를 마쳤습니다. 그리고 위풍당당, 철원으로 향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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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는 모두를 환대하기 위한 부스와 컴포터블존을 설치했어요. 접근성 지원 부스에는 시각장애인 관객을 위한 필담 도구, 청각이 불편한 관객을 위한 차음 헤드폰, 발달장애인 관객이나 예민한 마음을 가진 분들을 위한 심리 안정 인형, 휠체어, 휴게 공간을 갖췄습니다. 우리와 함께 간 대원들만이 아니라, 개별적으로 온 장애인 관객들, 도구와 휴식이 필요한 비장애인 관객들을 위한 것이기도 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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컴포터블존도 다양한 관객의 사랑을 받았습니다. 객석 한쪽을 구획해, 장애인·어린이·고령의 관객, 체력적으로 힘든 관객이 편안하고 안전하게 볼 수 있도록 만든 공간이에요. 그런데 예상 밖의 손님이 많았습니다. 유아차를 탄 아이와 가족들이 예상보다 훨씬 많이 찾아주셨고, 동네 할아버지 할머니들도 오셔서 앉아 쉬어 가셨어요. 우리가 기획할 때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다양한 사람들이 편안하게 즐기는 공간이 됐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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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큰 인기를 누린 건 '우정원정대원 모집 부스'였습니다. 지나가는 관객을 붙잡고 "우정원정대원으로 합류하실래요?"라고 묻습니다. 피스트레인 관객들은 마음이 파로마 가구처럼 열려 있기 때문에, 뭔지도 모르면서 일단 "좋아요!" 하는 분이 대부분입니다. 그럼 팔찌를 채워드리고 대원증(임명장)을 수여합니다. 대원증에는 '장애인·어린이·고령자 등 다양한 관객과 도움을 주고받으며 축제에서 어울리는 방법', 그러니까 대원의 임무가 적혀 있어요. 임무를 꼭 잘 수행해달라고 신신당부하면, 대원들은 자못 비장한 표정으로 부스를 떠납니다. 그렇게 이틀 동안 우정원정대원으로 합류한 사람이 무려 1,500명이었어요. 몇 명이나 올지 몰라 호기롭게 팔찌와 대원증 1,500개를 만들어 갔는데, 턱도 없었습니다. 첫날은 오후 3시에, 둘째 날은 오후 5시에 이미 동이 나버렸거든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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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이 모든 환대 뒤에는 눈물겨운 고생이 있었습니다. 철원의 주말은 무자비한 폭염이었어요. 그 땡볕 아래에서 뛰어다니고, 컴포터블존을 지키고, 목이 터져라 우정원정대를 설명해야 했습니다. 게다가 첫 프로젝트라 운영 시스템도 헐거웠죠. 그 와중에도 환대의 마음을 잃지 않고 관객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스태프 여러분께 정말 고생 많으셨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너무 큰 힘이 되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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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정원정대의 클라이맥스는 일요일 밤이었습니다. 해가 지자 시원한 바람을 타고 느닷없이 비료냄새가 콧망울을 간지럽히던 그때, 무대에 밴드 페퍼톤스가 올랐습니다. 가장 많은 대원이 기다린 무대였습니다.
음악 페스티벌에는 '슬램'과 '서클핏'이라는 문화가 있어요. 슬램은 관객들이 서로 거칠게 몸을 부딪치며 노는 것이고, 서클핏은 사람들이 원을 만들어 빙빙 돌며 뛰는 것입니다. 페퍼톤스의 공연이 시작되자, 다들 신나게 선을 넘기 시작했어요. 처음 함께 간 관객 대원과 스태프 40여 명만이 아니었습니다. 현장에서 처음 만난 백 명쯤 되는 관객들이 엉켰습니다. 아마 살면서 장애인 관객과 함께 뒤엉켜 노는 상상은 한 번도 해본 적 없었을 수많은 비장애인 관객들이 섞여 들어, 모두가 하나의 원을 그리며 돌기 시작했습니다. 격렬하고도 다정하게 말이죠.
그때 저는 평화롭게 폭주하는 그 원에서 몇 발짝 물러나 있었습니다. 혹시 누가 넘어지면 어떡하나 노심초사하고 있었거든요. 그 덕분에 서로 사이의 선을 넘어 담쟁이 덩굴처럼 엮여가는 사람들의 풍경을 온전히 볼 수 있었습니다. 어린아이처럼 웃으며 뛰고, 구르고, 깃발을 흔들고, 서로 손바닥을 박살낼듯 하이파이브를 하고, 얼싸안고, 고래고래 노래를 부르는 사람들, 그때 그들이 부르던 노래가 페퍼톤스의 '21세기의 어떤 날'입니다.
오늘 지금 바로 여기 멋진 우주 한복판에서
너를 만나 정말 기뻤다 눈을 감고 소리치며
21세기를 함께 느꼈던 우리 기억되길
— 페퍼톤스 '21세기의 어떤 날'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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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7월에 "반드시 철원에 갈 겁니다"라고 질러둔 걸, 저는 여러 번 후회했습니다. 조금다른과 팀이 되고, 피스트레인 사무국을 만난 뒤로는 풀리는 일이 거의 없었으니까요. 펀딩에서 거절당할 때마다 '우리가 만들고 싶은 장면이 별로 대단한게 아닌가'하는 의심이 선명해졌습니다. 그러나 그건 착각이었습니다. 아름답다. 21세기의 어떤 날, 어떤 슬픔도 없는 세상에 사는 사람들처럼 행복하게 웃으며 춤추는 이동약자와 그 친구들의 모습은 명백히 아름다웠습니다.
‘이렇게 멋진 곳에 이동약자와 그 친구들이 못 가는 건 안 돼!’, 세상에 몇 명이나 동의해줄지 모르는 충동으로 무턱대고 시작한 일입니다. 그런데 이제는 좀 늘어난 것 같아요. 피스트레인에서 사귄 1,500명의 친구들 중 162명이 메시지를 보내왔습니다. 거기 보면 이런 이야기가 가득하거든요.
“음악 앞에서 모든 사랑과 즐거움의 무게가 똑같아졌듯이 보통의 일상에서도 항상 이런 사랑이 유지되길! 제가 먼저 행동할게요”
우정원정대의 시작들 도와주신 멋쟁이 생일잔치 선생님들, 사례도 없는 원정대를 믿고 신청해주신 관객 대원 여러분, 상상 속의 아이디어를 현실로 만들어주신 스태프 여러분, 조금다른과 계단뿌셔클럽을 믿고 흔쾌히 협업을 결정해주신 피스트레인 사무국, 그리고 현장에서 함께 해주신 1,500명의 대원 여러분께 마음 깊이 감사드립니다. 이 모든 아름다움이 귀하 덕분에 가능했습니다.
존경과 감사의 마음을 담아
버기 드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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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뿌클레터는 어땠나요? 듣고 싶은 이야기,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맘껏 남겨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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