뿌하인드
뿌하인드는 계단뿌셔클럽의 '비하인드 스토리'를 전하는 비정기 레터입니다. 계뿌클 오피스 구성원들이 가끔 나누고 싶은 이야기가 있을 때 써서 보내드립니다. 오늘 작성자는 디자이너 온리이고, 마지막에는 같은 행사장에서 무대 경사로와 씨름한 운영 담당 제이의 이야기도 짧게 곁들였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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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명이 오는 행사장을 30만원으로 꾸미라구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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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계단뿌셔클럽 팀의 디자이너 온리입니다. 계단뿌셔클럽 앱을 시작으로 크러셔님들의 손에 닿는 모든 것을 디자인 하고 있어요.
오늘 다룰 이야기는 180명의 이동약자와 그 친구들이 모인 ‘크러셔 데이’ 행사장을 꾸민 이야기입니다. 단순히 보기 좋은 것을 넘어 포토존의 높이부터 무대 경사로의 각도 등을 고민했는데요. 근사한 행사장을 만들려면 작지만 다정한 결정들이 모여야 한다는 걸, 그래야 '모두를 위한 자리'가 된다는 걸 배운 저의 경험담을 들려드릴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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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크러셔데이가 열린 성수동 행사장은 온리에게 걱정이 많았던 장소였어요. 그곳에서 큰 행사를 치렀던 날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해요. 행사장 입구를 찾는 것도 좀 어려웠고 (사실 온리도 길을 잃었답니다😵💫), 층고가 높고 텅 비어 있는 공간이라 0부터 시작해야 했거든요.
무엇보다 지난 2년간 크러셔데이가 열렸던 공간(한국마이크로소프트 본사)과 차이가 있어서 새로운 고민이 많이 필요했어요.
- 작년 행사장은 자연광이 잘 들어와서 어디서 찍어도 사진이 잘 나왔는데, 이번 행사장은 내부가 조금 어두워서 사진찍기가 쉽지 않았어요.
- 작년에는 포토존으로 쓸 공간과 집기가 충분했는데, 올해는 그렇게 쓸 수 있는 공간이 마땅치 않았어요.
- 작년 행사장은 기본적으로 잘 꾸며진 공간이었는데, 올해 행사장은 흰 도화지 같은 빈공간에 가까워서 어디서부터 손대야할지 막막하기도 했고요.
그래도 크러셔 데이의 규모가 커져서(이건 정말 기쁜 일!) 장소를 변경하게 된 거니, 새로운 공간에 맞는 방식으로, 우리가 원하는 분위기를 하나씩 직접 만들어보자는 마음으로 준비를 시작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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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사장 꾸미기' 업무를 받았을 때, 아주 원대한 계획을 세웠어요.
벽에 데코 시트지를 붙여 허전함을 없애고… 건물 외부에 대형 현수막을 달아서 길 찾기도 쉽게 하고… 참 행복하고 야심찼던 꿈이었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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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바로 현실을 마주했습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행사장 꾸밈 예산이 30만원이라는 사실을요. 30만원이면 필수품인 목걸이, 이름표, 포스터, 현수막을 챙기기에도 빠듯한 예산이에요.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예산 확보를 위한 인형 눈 붙이기 부업을 알아봐야 하나 고민했을 정도였어요!
상황을 설명하고, 팀에 ‘예산을 늘려보자’는 제안을 했어요. 중요한 행사이니, 다른 데서 아껴서 조금만 더 써보자고요. ‘잘 꾸며진 행사장 → 사람들이 사진 찍고 공유함 → 계단뿌셔클럽을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릴 수 있음’이라는 치밀한(?) 논리가 어느 정도 공감대를 얻었고, 덕분에 예산을 2배 이상 늘려서 준비를 이어갈 수 있었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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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같이 머리를 싸매고 예산을 조정해 다행히 예산이 늘었지만, 여전히 넉넉하지 않았어요.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뭘 포기하고 뭘 남길지'를 냉정하게 고민하게 됐어요. 그 과정에서 저한테 계속 떠오르는 질문들이 있었어요.
'행사장에서 모두가 편하게 사진을 찍을 수 있을까?' '행사에서 만난 다정함이 그냥 휘발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화려하게 꾸미는 것보다 이 질문들에 답하는 게 더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두 가지 작업에 집중했어요.
1. 모두가 쓸 수 있는 포토존 만들기
계단뿌셔클럽 최대 행사인 만큼 인증할 수 있는 포토존은 꼭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포토존을 기획하면서 자연스럽게 이런 질문들이 떠올랐어요.
'휠체어 사용자와 비사용자가 함께 사진을 찍으려면 어느 높이가 적당할까?''다양한 휠체어가 무리 없이 들어올 수 있으려면 통로 너비가 얼마나 필요할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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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민 끝에, 고정형이 아닌 이동식 포토존으로 만들었어요. 포토존이 고정되어 있으면 사람이 그 앞으로 가야 하지만, 이동식이면 포토존을 사람에게 맞출 수 있으니까요. 사람이 자리를 잡으면, 포토존이 그 사람에게 맞춰서 세팅되는 방식이요. 덕분에 휠체어 사용자도, 어린이도, 다양한 사람들 모두 편하게 인증사진을 찍을 수 있었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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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그 포토존은 고이 옮겨서… 제 모니터 앞에 자리하고 있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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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크러셔데이 슬로건은 '다정을 넘어 우정으로 넓히는 세계'였어요. 행사장에서 오간 다정과 우정이 그날로 끝나버리면 아쉬울 것 같더라구요. “이 마음을 각자 집으로 들고 갈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고민하다가, 제 사무실 자리에 두었던, 어느 팝업 스토어에서 받았던 굿즈 부적에서 아이디어를 얻었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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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 4가지 컨셉의 다정부적 카드를 만들게 되었고, 간식과 함께 나눠드렸어요. 부적 뒷면에는 각각의 ‘발휘 조건’도 적혀 있었는데요. 거창한 것이 아니라 일상으로 돌아가서 한 번쯤 해볼 수 있는 작은 다정액션들이었답니다. 덕분에 "단순히 보기 좋은 기념품이 아니라 실제로 할 수 있는 액션을 알려줘서 좋았어요!"라는 피드백도 들을 수 있었어요.
혹시 부적을 못 받아서 아쉬우신 분들! 우연히 버기, 윌리, 온리를 만나게 된다면(?) 요청해주세요. 소중하게 품고 다니는 다정 부적 하나씩 드릴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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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렁다리가 된 경사로, 그리고 팔레트 한 장 (by. 제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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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행사장 한쪽에서는, 무대 경사로를 두고 마지막까지 머리를 싸맨 사람이 또 있었어요. 행사 전체 운영을 맡은 제이는 휠체어를 타는 윌리와 2부 연사님들이 도움을 받아 겨우 올라가는 게 아니라, 안전하고 자연스럽게 무대에 오를 수 있는 길을 만들고 싶었대요. 권장 기울기는 1:12. 60cm 무대를 기준으로 하면 경사로만 7m가 넘게 필요했고, 전문 설치 견적은 90만원. 제이는, 그 돈을 아낄 수 있다면 크러셔들의 식대나 포토존 예산으로 쓰일 수 있다는 사실을 떠올리며 이동식 경사로 두 대를 빌려서 사용하는 대안을 찾아냈어요.
어렵게 경사로 두 대를 빌렸는데, 문제는 행사 전날 발생했어요. 경사로를 놓고 막상 무대에 올라가 보니 이동식 경사로가 출렁다리처럼 흔들렸거든요. 수동휠체어를 오래 탄 제이도 순간 불안하다고 느낄 정도였대요. ‘잘못하면 사고다!’ 머리가 새하얘진 그 순간, 옆에 있던 윌리가 한마디 던졌어요. "무대 설치할 때 쓴 팔레트를 아래에 받쳐보면 어때요?" 행사 당일 아침, 추가로 빌린 팔레트로 경사로 아래를 받치고, 비는 공간은 포토존을 만들고 남은 완충재로 채웠어요. 그랬더니 출렁다리가 튼튼다리가 되었습니다! 뜻밖의 조합이었죠.
행사가 끝난 뒤 제이가 한 말이 인상 깊었어요. "정답이 있었던 게 아니라, 계속 질문이 있었던 것 같아요. '그러면 이건 어때요?' — 이런 말들이 하나씩 쌓이면서, 경사각을 맞추듯 해답도 같이 만들어졌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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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더 다정한 행사를 만드는 일, 정말 즐거운 일이더라고요. 포토존의 높이도, 경사로의 각도도, 작은 결정 같지만, 그 작은 결정들이 모여 모두가 즐거워하는 장면을 만들어낸다는 걸 배운 시간이었어요. 배운 팁들을 정리해 공유하면서 오늘 뿌하인드는 마무리합니다! 다음에도 더 좋은 이야기로 돌아올게요.
오늘 뿌클레터는 어땠나요? 듣고 싶은 이야기,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맘껏 남겨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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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P: 다정한 행사를 만들고 싶다면, 생각해보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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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크러셔데이를 준비하면서 시행착오처럼 하나 둘 쌓였던 체크리스트인데요. 또 누군가 비슷한 고민을 하게 될 수도 있을 것 같아서 공유해봅니다. (휠체어 사용자에게 집중된 내용이 있을 수 있어요!)
- 포토존은 단 없이 설치하거나 이동식으로! 높이를 고정해두기 보다는 사람 위치에 맞춰 포토존을 움직일 수 있는 방식이 훨씬 많은 사람에게 편했어요.
- 바닥 선 정리는 필수. 전선이나 케이블은 테이핑으로 단단히 고정하고, 필요하다면 안전 테이프까지 함께 붙여주세요. 작은 턱이나 들뜸도 이동에는 꽤 큰 방해가 되거든요.
- 등록대나 안내 테이블을 덮는 포스터나 패브릭은 자제해주세요. 무릎 공간이 막히면 휠체어 사용자가 가까이 다가가기 어렵거나, 앞바퀴에 패브릭이 끼어 사고가 날 수 있어요.
- QR코드와 안내 포스터 위치는 휠체어 사용자의 눈높이에서도 자연스럽게 보이고, 촬영할 수 있는 위치인지 한번 더 확인해주세요.
- 무대 자막은 아래가 아니라 위로. 스크린 높이가 낮은 공간에서는 아래 자막이 앞사람 머리에 가려지는 경우가 많았어요. 상황에 따라 자막 위치를 위쪽으로 조정하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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